"좋은 직업은 무엇일까"
"직업이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근로소득? 사업소득?"
먹고사는 직업에 관한 고찰시리즈입니다.
1. 출근은 언제나 힘들다
2. 하루의 시작
3. 버스기사 시점에서의 버스
4. 느낀점
5. 세상에 쉬운일은 없었다
6. 모든건 다 나의 자산이 된다
지난 포스팅의 버스기사 되어보기 속편입니다.
1. 출근은 언제나 힘들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서 대충 씻은 후 찬공기를 뚫고 집을 나섭니다.
아직 밖이 어둡습니다.
차의 시동을 걸고 컨테이너가 있는 차고지로 이동합니다.
일이 익숙해지면 좀 더 여유 있게 일어나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누가 하라고 떠민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한 여정이니까요.
이전 직장을 그만둘 때쯤에 시간을 내어 대형면허를 딴것도, 버스자격증을 딴 건도, 사비를 들여 버스연수원을 등록한 것 모두 오늘의 첫날을 위해서였죠.
그 모든 과정을 위해 투입된 비용과 저의 공수를 생각해서라도 일단 해봐야 했습니다.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유일한 불빛이 있는 컨테이너 앞 버스종점 정류장에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하나둘씩 기사님들이 오기 시작합니다.
2. 하루의 시작
다 모이니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서 회의를 시작합니다.
회의내용은 대충 노선이 겹치는 타 회사의 마을버스보다 조금 더 고객을 태우기 위한 전략과 배차간격조정을 잘해야 한다는 내용.
간단히 제소개도 하고 난 후 다 같이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알고 보니 차고지가 별도로 있어서 그곳에 가서 차를 점검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간단히 점검을 한 후 다시 컨테이너로 복귀합니다.
종점으로 복귀 후 저의 운전실력을 테스트합니다.
작은 마을버스였는데 무난히 몇 바퀴를 돌고 나서 복귀합니다.
이때 들은 주의사항은 속도위반등의 과태료는 개인이 알아서 내야 한다는 것.
사실 마을버스 운행동안 사고 및 과태료 기록이 없어야 서울시 등 일반버스회사로 이직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사고는 다 개인이 처리하곤 하죠.
약간은 서글펐습니다. 업무상 사고인데 개인이 보상한다니...
하지만 이곳은 다른 곳입니다.
자꾸 예전 회사와 비교를 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을 거니 그러려니 합니다.
3. 버스기사 시점에서의 버스
오늘은 첫날이니 저는 조수석에서 하루종일 동행을 하기로 합니다.
운전도 운전이지만 노선도 모르니 아직 제가 혼자 운행하는 건 무리겠죠.
저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젊은 기사님과 동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리는 마을버스 운전석 오른쪽.
그때 찍은 사진이 있네요.
역시 사진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줍니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어서 운행을 시작합니다.
살면서 버스를 타기만 했지 첫차가 운행되는 것도 버스기사 옆에 동승을 하는 것도 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젊은 기사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십니다.
기본적인 배차간격, 노선 등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어느덧 노선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종점인 컨테이너에 차를 잠시 정차 후 10분 정도 대기를 하다가 곧바로 출발을 합니다.
여기서 궁금점이 생겼습니다.
10분이면 정말 화장실도 가기도 빠듯한데 만일 운전 중 혹은 종점에 오고 나서 배탈이 나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젊은 기사님은 그래서 항상 지사제를 갖고 다니고 너무 급할 때는 약을 드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버스 기사님은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업무는 쉽지 않겠구나...
하긴 바쁜 시간 많은 승객들의 발이 되니 버스 기사님들은 책임감 없이 할 수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본격적으로 출근시간이 되자 버스가 꽉 차도록 사람들이 탑승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도로에도 출근차량으로 많은 차가 붐빕니다.
그 순간 갑자기 오른쪽 골목에서 예고 없이 차가 들어옵니다.
기사님은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간신히 사고를 모면하였지만 고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질뻔한 아주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가 버스의 운전방식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면 직접 버스를 타고 운행을 해보니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느덧 출근시간이 끝나고 마을버스에는 약간의 여유가 왔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배차간격에 대한 무선이 계속 오며 딱히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이 될 때쯤 젊은 기사님께서 버스에서 내리십니다.
식사를 하러 가자시면서 컨테이너로 향합니다.
컨테이너에는 인근 식당에서 배달된듯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사님께서는 다음 배차간격에 대한 부담이었는지 저도 나름 밥을 빨리 먹는 편인데 정말 마시는 수준으로 밥을 드셨습니다.
내가 빨리 먹어야 다음 기사님과 교대를 빨리 해줄 수 있어서 빨리 먹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운행재개.
확실히 점심시간 이후의 오후는 도로도 버스의 혼잡도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제가 생각했던 버스기사님의 여유가 조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오전조의 근무가 마무리되고 오후조 인원들이 슬슬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상황을 인수인계하고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기사님들은 버스의 내외부를 청소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마을버스는 열악해서 따로 청소하시는 분은 없었고 버스기사님이 직접 버스의 내외부를 세차를 합니다.
이 과정이 있다 보니 실제 퇴근시간이 약간은 늦어집니다.
세차까지 하고 나서 교대를 한 후에 드디어 퇴근길에 오릅니다.
퇴근길에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아프게 만듭니다.
4. 느낀점
제가 마을버스 기사를 해보며 느낀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아침잠이 없어야 한다.
오전조가 배정되면 최소 4시~5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합니다.
차를 점검하고 기본적인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침잠이 많거나 술을 좋아해서 전날 음주를 자주 한다면 쉽지 않은 직업일 겁니다.
2.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마을버스회사가 모두 제가 갔던 곳과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갔던 곳이 조금 더 열악했던 곳일 뿐이죠.
기사님들의 휴식공간 겸 식당은 작은 컨테이너 하나가 전부였고 화장실도 모두 인근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했습니다.
마을버스회사를 간다면 조금이나마 시설이 괜찮은 곳으로 가시기를 추천합니다.
마을버스연수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괜찮은 곳도 많았습니다.
3. 운전을 정말 잘해야 한다.
매일 같은 노선을 돌지만 보통 마을버스의 노선은 특정역을 가는 노선이 많기에 출퇴근 시간대의 역 근처는 정말 많은 차와 사람들로 사고의 위험이 높습니다.
운전을 보통보다는 조금 더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단순히 운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간 곳에서는 배차간격에 대한 압박이 많았습니다.
각 기사님 별로 무전기를 갖고 있으면서 현재 배차에 대한 무선이 수시로 오고 있었습니다.
운전뿐만 아니라 배차간격에 대한 신경도 수시로 써야 하며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도 이 배차간격을 맞추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5. 세상에 쉬은 일은 없었다.
정해진 노선만 운전하면 된다 생각했기에 단순노동이라 생각하고 시작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전형적인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을버스기사님들은 무사고 경력을 채워 더 크고 대우가 좋은 일반버스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젊은 분들은 운전직 공무원의 경력을 채우기 위해 꾹 참고 열심히 일하시는 게 느껴졌고요.
사실 버스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난 후에 버스연수원 여러 곳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 중 한 곳은 유독 저를 냉대했었습니다.
저의 경력사항을 물어보더니 직접적으로 말만 안 했지 너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라는 간접적 표현이었죠.
그분은 제가 이일과 맞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분이 정말 현실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딱 하루만 나가고 더 이상 나가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저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도전했다가 하루이틀 만에 그만두는 걸 많이 봤기에 예상이 되셨을 겁니다.
6. 모든 건 다 나의 자산이 된다.
대략 3달에 걸쳐서 대형면허 취득, 버스자격증 취득, 연수원에서의 연수 후 마을버스 취업까지 끝이 났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하루 만에 그만두려고 몇 달간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나는 생각에 많이 허무했습니다.
하지만 젊어서의 모든 경험은 다 자산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버스기사를 체험했던 그날 이후로 몇 년 동안 휴대폰의 새벽 2시 30분의 알람을 지우지 않고 계속 저장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던 그때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쉬워 보이던 버스 기사님들의 세계도 엄청 치열한 곳이라는 걸 직접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저는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덕분인지 서두에서 말했듯 지금은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꽤 긴 기간 동안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 중의 하나가 저때의 마을버스 기사 경험이라고 지인들에게 저는 자신있게 말하고는 합니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습니다.
젊어서의 경험은 다 자산입니다.
내가 무엇을 제일 잘할까.
나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하지 마시고 우선 실행해 보고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치며...
최근 마을버스 회사가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비록 짧게나마 체험해 봤던 저는 상황이 대충 이해가 됩니다.
지자체와 잘 협의가 되어서 우리들의 라스트마일인 마을버스의 상황이 여러모로 나아져서 기사님들의 처우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상황도 모두 나아졌으면 합니다.
버스기사 체험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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